의미 있는 수업 연구
봉림초등학교
교장 이환주
군에 입대할 당시 나는 모교인 사천시 용현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고성군 동광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1966년 3월 1일 자로 발령 받아 그 해 5월 10일 군에 입대 했으니 2개월 10일 정도 근무한 셈이다. 내가 교직 생활 중에 가장 짧게 근무한 학교이기도 하다. (훗날 두 번째는 3 년 근무했음)
그 2개월 동안 내가 담임한 학반은 4학년 3반이었는데, 4월 중에 그 해의 처음 수업연구를 하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5월 10일이 입대할 날자이고 이고 보니 피할 수 없는 수업연구였다.
당시 수업연구는 교원들의 현직연수 활동 중에 가장 으뜸으로 여기는 중요한 활동이었다.
교사들은 일 년에 수업연구를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는 반드시 해야만 했다.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교직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교사들은 당연히 해야 하는 연수라고 알고 있었다.
당시 용현 초등학교의 수업연구 업무는 K 선생님께서 담당하고 있었는데, K 선생님은 내가 용현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직접 담임은 아니었지만 다른 학년의 선생님이었던 분이셨다.
그랬기 때문에 다음 달에 입대한다는 핑계로 계획되어 있는 수업연구를 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요즈음 내가 일선 학교에 와서 근무하고 보니, 선생님들의 현직 연수 방법이 많이 달라진 것인지 월중 계획에 수업연구 학반 표시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교장의 교내 장학 방법도 달라져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선생님의 수업을 보는 경우는 교육청에서 주최하는 학습지도 연구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교사가 미리 수업을 공개하고 여러 교사들의 지도 조언을 듣는 경우가 고작인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요즈음은 노력하면 반드시 그만큼 보상이 있어야만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학습지도 연구 대회에서 입상하면 연구 실적을 인정해 주는 경우처럼, 노력하면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지 아무런 보상 없는 교내 수업연구 등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양이다.
보충 수업을 하거나, 부진아 특별지도를 하거나, 다른 반에 보결 수업을 하면 반드시 그에 따른 보상이 필수적이다.
옛날 우리들이 교사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이다. 교직 사회가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다는 방증일까?
당시 나는 수업할 과목을 평소에 내가 관심이 많았던 국어과를 택했다.
교생 실습 중에 수업 연구를 할 때도 나는 국어과를 하였다. 그 때 30 여명의 교생들 중에 국어과 수업을 한 교생은 나 혼자였다. 국어과를 선택하는 것을 몹시 꺼려하는 경향이었다.
교사의 말 한마디, 판서 글씨 모양, 어린이들의 발표 내용, 발음 등 등, 어느 것 하나 조심하지 않으면 수업 협의회 때 큰 낭패를 당하기 쉬운 과목이 바로 국어과 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 수업 협의회는 참으로 대단했다. 전 교사가 수업 참관을 하고나서 오후에 실시하는 수업 협의회 때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발표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장 훌륭한 교직원 현장연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수업에 참관하는 선생님들은 발표할 자료를 찾기 위하여 진지하게 수업을 참관 한다. 수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는 사람이 가장 돋보이는 발표자요 능력있는 교사로 인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업 연구의 단원은 제비와 흥부, 수업 방법은 그림 연극을 감상하고 그에 대한 느낌을 발표하는 내용이었다.
자료실에 비치되어 있는 그림 연극 틀과, 그림 자료를 활용하여 수업을 전개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오후 협의회 시간이 다가오자 몹시 긴장 되었다.
수업은 교사들에게 생명과도 같다. 수업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교단에 선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자기 수업을 공개하고 평가를 받는 것을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스스로 교단에 서기를 포기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교장 선생님을 비롯하여 전 선생님들이 4학년 3반 교실에 모였다.
먼저 수업을 한 내가 자신의 수업에 대한 자평을 했다.
입대할 날을 며칠 앞두고 수업연구를 하다 보니 하기 싫은 수업이라, 준비도 부족했고 제대로 된 수업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이어 담당선생님께서 한 이야기는 내가 교직 생활을 하면서 항상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한 말이었다.
다음 달에 입대할 사람에게 수업연구를 하도록 계획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입대하면 3 년 동안 교직을 떠나 있게 되는데 오늘 수업의 잘 잘못을 찾는 것보다 그 동안 교직을 잊지 말고 항상 마음 속에 담아두게 하는 데 의미를 두자고 했다.
교사의 생명은 수업인데 그 일을 잊지 말고 항상 마음 속에 담아 두라는 이 말은 이후 나의 교직 생활을 통하여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날 여러 선생님들이 나의 수업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던 말들을 항상 생각하면서 연수에 임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따라서 입대 전 수업연구는 내 교직 생활에 정말 큰 의미가 있는 일이 된 것이다.
다만 좀 더 좋은 수업을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일상생활 중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 중에, 하찮은 일이라도 의미가 부여된다면 대단한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교육활동 중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교육적인 의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교육활동을 정치적이거나 경제적 논리로 풀어나가려고 하면 곤란하다.
인기 위주, 보이기 위한 것, 비위 맞추기를 하거나 자신의 출세를 위한 활동으로 된다면 그것은 다분히 교육이 정치적일 수 있다.
또한, 이기적이고, 편리위주,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한다면 교육이 경제적일 수 있다.
교육활동이 이렇게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곤란하다.
교육활동은 어디까지나 교육적으로 이루어져야만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활동이 될 것이다.
우리 교사들이 힘들고 고되면, 그만큼 아이들은 즐겁고 행복해 질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알고 실천한다면 참으로 좋은 학교가 될 것으로 믿는다.